『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기 위한 조사 작업이 본격화 되고 있다.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지난 8월 29일 사전에 수록될 1차 명단을 발표했고, 현재는 2차 명단에 포함될 지역별 인사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전남지역은 타 지역에 비해 그 관심도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얼마 전 “위원회”에서 전남지역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한 연구원을 만났다. 그는 전남의 경우는 기존에 조사된 자료도 미비하고 연구 활동이 부족해서 어디서부터 접근을 해야 할 지 매우 막연하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타 지역은 이미 시민단체나 관련 연구자를 중심으로 이런 문제에 대한 토론회나 자료수집이 꾸준히 진행되어 왔던 반면, 우리 지역에서는 그런 움직임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지역사회의 정체성과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목포를 예로 살펴보자. 1차 발표된 친일인사 명단에는 “차남진·현기봉·현준호·정만조”와 같이 당시 지역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지도층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행적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기한 대표 인물 중 ‘차남진’의 경우는 그의 장례식이 목포시민 사회장(1970년)으로 치러졌었다. 시민 사회의 이름으로 영결식이 치러지고 죽음이 애도되던 인물이 지금은 친일 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분류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매우 혼란스럽다. 그간 이런 인물들의 행적에 대한 자료수집이나 연구 작업이 선행되지 못했고, 무엇보다 그들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공론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친일 인사들은 현재 남아 있는 문화유적과도 관련이 깊다. 목포에 남아 있는 옛 호남은행 건물은 그동안 일제강점기 민족은행으로 알려져 왔는데, 정작 그 은행을 세운 ‘현준호’는 친일파로 지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달산(儒達山)의 이름과 목포시사(木浦詩社) 건물”은 대표적인 친일파인 '정만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민족운동의 보금자리로 알려져 있는 “구 목포청년회관 건물” 역시 친일유지 '차남진'과 관련이 있는 식이 된다. 자칫하면 지금까지 지역민들이 아끼고 자랑해 왔던 문화유산들이 하루아침에 친일파의 잔재로 전락 될 위기에 처해 있다. 때문에 그 흐름과 이해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지역의 문화는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친일인명사전』의 문제는 단순히 과거의 일을 가지고 친일파를 선별하는 작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보다 발전적인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지역의 유지와 서민들의 생활상에 대한 연구 활동이 지역민을 중심으로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역 인물들의 행적을 살펴보는 일이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시발점이 되리라는 생각을 가져보며,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근대 인물 연구에 대한 관심과 토론이 지역사회에서 공개적으로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