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보기주소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aguni11
---------------------
인터넷신문 "목포21"에 게재한 글
최성환의 개성 답사기②
- 개성의 문화유적.
지난 8월 30일 6․ 15공동위원회 목포지부에서 마련한 개성 방문행사에 참가하여 처음으로 북한의 문화유적을 답사하게 되었다. 특히 개성은 고려의 도읍지로 이쪽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유적들을 볼 수 있다는 마음에 설레기도 하였다.
맨 처음 송도삼절이라 불리며, 개성 사람들의 자랑인 박연폭포를 둘러 본 후 고려시대 산성인 대흥산성의 북문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박연폭포에서 10분 정도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자 도착했다. 대흥산성은 북한의 국보 제126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성이다. 천마산성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 곳이다. 축성연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고려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북문의 현재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옛 고려의 심장부인 개성에 있는 산성에 올랐다는 기분이 참 묘했다. 성돌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들이 느껴졌다.
사진1> 고려시대에 조성 된 대흥산성 4대문 중 하나인 북문.
사진2>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대흥산성 성벽
북문의 윗 망루에서는 박연폭포의 물이 떨어지는 부분도 볼 수 있었다. 폭포의 상부에 물이 고여 있는 모양이 큰 박의 형태라 해서 박연폭포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진입하는 통로가 좁아서 관광객들이 줄어 섰다가 차례로 내려가서 간단히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올라와야 하는 곳이다. 특별히 볼 것은 없지만 이름의 유래가 얽힌 장소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빠지지 않고 가보는 곳이다.
사진3> ‘志遠’이라 새겨진 바위
대흥산성 북문의 위쪽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쉼터와 같은 공간이 있었다. 주변의 여기 저기 바위에 붉은 색 글씨가 새겨진 곳이 많았다. 그 사이에 ‘志遠지원’이라 새겨진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뜻을 멀리 두라, 원대한 포부를 품으라’는 의미의 문구 같았다. 찬양성 시가 곳곳에 새겨져 있는 사이에서 짧지만 의미 있는 이 단어가 매우 인상 깊었다.
원래 이곳에서는 고려시대 사찰인 관음사를 방문하는 것이 평소 일정에 포함되어 있는데, 최근에 폭우로 인해 진입로가 두절되어 이 날은 방문이 어렵다고 했다. 북한의 고려시대 사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큰 기대를 하고 왔는데,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이제 산에서 내려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였다. 개성관광의 점심은 주로 통일관과 민속여관 두 곳을 이용하고 있다. 그중 민속여관이 외형상 좀 더 전통적인 건물 구조를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전통가옥를 개조하여 만든 곳으로 총 50동의 건물이 있다고 한다. 이곳의 백송식당이라는 곳에서 11개의 놋그릇에 반찬이 담겨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사진4> 민속여관 풍경
시장끼가 있어서 인지 반찬들이 다 입맛에 많고 맛이 좋았다. 익히 알려진 것 처럼 북한의 접대원 동무들이 예쁘다고 소문나 있는데, 이곳에 와보니 그 명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매우 단아하고, 친절했다. 또 이곳에서는 막걸리를 한잔에 1달러에 판매를 하고 있었다. 약초를 이용해 담고서 향긋하고, 그 맛이 일품이었다. 냉면도 한 그릇에 2달러에 판매를 하고 있다.
사진5> 민속여관에 맛 본 11첩 13반 모습
사진6> 북에서는 화장실을 위생실이라고 한다.
식사를 한 후 실개천이 흐르는 민속여관을 주변을 산책하다가, 중간부분에 있는 책방에 들어갔다. 음악CD, 그림 등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으며, 특히 이곳에서는 북한의 책을 사갈 수 있었다. 북한사전을 비롯해서 일반적인 책들은 구입해서 가져가도 출입국 사무소에서 제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책값이 매우 비싸다는 점이다.
조선의 사찰, 조선의 역사박물관 등 필자 관심이 있는 몇 권의 책을 구입하기 위해 가격을 물어봤는데, 우리 돈으로 13만원이 넘었다. 책의 질은 1960~70년대 수준 정도 밖에 안되 는데 왜 이리 비싼 가격을 책정해 놓았는지 모르겠다. 책을 파는 곳이 없어서 희귀성 때문에 그런지, 문화의 인쇄여건이 좋지 못해 그런 것이지 알 수 없었다. 비싸기도 했지만, 바꿔가지고 간 달러가 부족해서 책을 구입하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사진7> 민속여관 책방에서 판매하는 책. 개성 관광 도중 이곳에서만 책을 구입할 수 있다.
민속여관에서 든든한 점심 식사를 한 후 이동한 곳은 정몽주의 서원인 숭양서원이다. 본래는 정몽주가 살던 집이었는데 후에 서원이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전에 건축된 서원양식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도 이곳은 보존되어 왔다고 한다. 건축양식은 서원의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형태로, 앞면에 학생들의 공부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좌우로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 강당이 있다. 그 뒤로 선현들을 모신 사당이 있다.
사진8> 숭양서원 출입구 삼문 모습
사진9> 숭양서원 강당
정몽주가 살았던 곳에서 이번에는 그가 비운의 운명을 마친 선죽교로 자리를 옮겼다. 이방원에 의해 목숨을 잃은 곳이고, 피 흘린 자리에서 대나무가 피워 올라 선죽교(善竹橋)라 부르게 되었다는 곳이다. 원래는 선지교(善地橋)라 불렀다고 한다. 개성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유적지 중 하나이다. 그 때문인지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다른 곳보다 훨씬 많았다. 사람이 없는 순간에 유적 사진만을 찍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리의 규모는 작았지만, 그 역사성과 슬픈 사연이 깃든 선죽교를 직접 답사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이었다. 선죽교 주변에 담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담장 너머로는 개성 주민들의 생활하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사진10> 정몽주가 충절을 지키다 최후를 맞이 한 선죽교 풍경
사진11> 선죽교비. 한석봉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선죽교 맞은편에는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두 개의 커다란 표충비가 세워져 있다. 영조와 고종이 각각 건립한 것이다. 두 개의 표충비 밑을 바치고 있는 거북이가 암수로 구분되는데, 안내원이 코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설명하자 많은 사람들이 거북이의 코를 만지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남이나 북이나 관광하는 방법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사진12>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표충비
마지막 유적지는 고려박물관이다. 고려시대 성균관을 활용하여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고려박물관은 고려시대 최고 교육 기관인 국자감의 후신인 성균관 건물로서 원래 있던 고려시대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현재 건물은 17세기 초에 건축된 것이다. 현재는 건물 내부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여 고려청자, 금속활자 등 약 1,000여 점의 고려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사진 13> 옛 성균관 건물을 활용한 고려박물관
중국의 북경대학교에서 옛 건물을 현 대학건물로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를 본 적이 있었는데, 유서 깊은 성균관 건물을 고려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전시 시설이나 관리 상태는 매우 부실했다. 전시 유물이 별도의 쇼케이스 같은 것에 들어 있지 않고, 곧바로 공기나 사람의 손에 노출된 상태로 있는 것들이 많았다. 설명문에 대부분 국보라고 되어 있어, 혹 복제품인가 하고 질문했더니 대부분은 진품이라고 한다. 국보를 직접 손으로 만져보는 재미가 있었지만, 관리 차원에서는 상당히 우려가 되기도 했다.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은 확실히 우리하고는 조금 다른 듯 했다. 서원에서 출입구를 사용할 때 우리 같으면 우측 문으로 들어가고 나가도록 안내원이 유도를 한다. 그것이 전통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향교를 출입할 때 무심코 왼쪽 문으로 들어오면, 향교 어르신들이 혼쭐을 내기도 한다. 그런데 북측의 안내원은 그런 전통문화와 관련된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성균관에서도 예전 같으면 임금만 다니는 길 위를 그냥 편하게 밟고 지나다니는 것 같다.
사진 14> 불일사 5층 석탑
고려박물관의 야외 전시장에는 고려시대 불교유적, 특히 석탑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현화사, 흥국사 등 일반인들도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법한 유명한 사찰들의 유적들이 이곳에 옮겨 세워져 있다. 무슨 이유로 현장에 보존하지 않고, 이곳으로 다 옮겨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자리에서 북측의 국보급 불교 문화재를 살펴 볼 수 있어 좋았다.
사진 15> 고려박물관 기념품 판매장 모습
고려박물관의 입구에는 기념품 판매장이 있었다. 북측의 우표를 전시 판매하는 곳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 위원장의 얼굴사진이 담겨 있는 우표만 제외하고, 일반적인 기념우표들은 구입이 가능했다. 관광객들은 주로 북한 토속주나 건강식품을 구입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문화재 탐방을 마치고, 다시 출입국 사무소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에 다시 개성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처음 들어와서 봤을 때 보다 어색함이 덜하다. 불과 한나절을 개성에서 보냈을 뿐인데...
박연폭포에서 이야기 나눴던 한 북한 안내원과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남측의 금강산 관광 중단에 대해 물어왔고, 또 이번 개성 방문이 6․15공동위원회 목포지부에서 마련한 행사라는 말에 남측이 6․15공동선언을 어떻게 생각하며, 그것을 지킬 의지가 있냐고 물었다. 오전에 출발하기 전에 현대 측 직원들이 북측 안내원들과 일상적인 대화 외에 남북관계나 깊이 있는 내용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유의사항을 들은 터라, 북측 안내원의 이러한 대화시도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였다. 오히려 그들은 거리낌 없이 편하게 이야기 하기를 원하는 데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조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화 중에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 분명히 느껴지기도 했는데, 불편해진 남북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을 마무리 했다. “그러니까 더 자주 만나야 되지 않겠는가, 오늘 잠시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 한 것만으로도 서로를 조금 이해하게 되는 것 같은데, 한민족 동포끼리 자주 만나다 보면 다 잘 되니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