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라남도는 근대문화유산의 문화재 등록을 위한 실태조사 학술용역을 실시하였다. 근대문화유산이란 '개화기'를 기점으로 하여 '광복전후'까지의 기간에 축조된 건조물 및 시설물로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등록문화재로 등재하여 보존 관리하는 제도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근대문화유산 보호에 있어서 목포 지방은 매우 앞서가던 곳이었다. 지난 1999년 기존에는 일제식민치하의 잔재로 여겨지던 구 동양척식회사 목포 건물이 시민들의 노력으로 문화재로 지정된 일이 있었다. 이는 문화유산 인식변화에 대한 큰 화제거리가 되었고, 각종 언론의 집중 취재를 받았다. 서울의 한 방송국 프로듀서는 "역시 목포답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면서, 목포가 타지역의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실제 이 일은 근대건축물이 지니는 문화재적 가치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았고, 문화재청에서 '등록문화재'라고 하는 근대문화유산 보호제도를 제정하게 된 배경에도 일조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불과 5년이 지난 지금 목포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문화재로 지정된 지 5년이 되어 가는 동양척식회사 건물은 여전히 보수공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 또한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하여 "목포 역사문화의 길"을 조성하겠다는 방대한 프로젝트가 수립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정명여학교 유애나관, 동양척식회사 관사 건물 등 소중한 자원들이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철거되어 버렸고, 시 재산이 된 죽동교회 건물마저도 소방도로 개설을 이유로 철거위기에 처해 있다.
필자는 얼마전 근대문화유산 보호에 선구적이라는 과거의 칭찬과 정반대의 핀잔을 외부인들로부터 듣게 되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광주·전남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유산 답사 모임에서 최근에 알려진 동양척식회사 관사 건물을 보기 위해 목포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 갔을 때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소리 소문 없이 철거된 후의 빈 공터뿐이었다. 관사 건물을 매입한 인근 교회에서 말썽이 생기기 전에 서둘러 철거를 강행한 것 같았다. 어느 언론사에도 이 사실이 보도되지 않았었기에 현장에 동행했던 필자는 매우 당혹스러웠고, 답사 온 일행들은 실망스러운 눈빛이었다. 어이없는 장면을 목격한 그들은 "도대체 이 지경이 되도록 목포시와 시민들은 뭐하고 있는 걸까? 목포시에는 이런 짓을 막아낼 만 한 시민단체도 없고, 대학교수도 하나 없나보지"하며 볼멘 소리를 쏟아내었다. 불과 5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문화유산보호에 선구적"이라는 평이 이제는 "목포사람들 한심하다"는 평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더구나 철거된 동양척식회사 관사 건물은 건축물의 규모나 형태에서 다른 건축물들보다 훨씬 우월한 것이었고, 그 위치 또한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곳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은 더했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일어난 근대문화유산의 손실은 한마디로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우리 고장의 문화운동에 대한 몇 가지 새로운 희망을 보게 되었다. 하나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National Trust)"이 우리 지역에서도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이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자원과 문화자산을 확보하여 시민 주도로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시민환경운동을 말한다. 아직은 그 움직임이 미비하지만, 새로운 문화운동의 하나로 선진국에서는 매우 활성화되어 있는 문화운동개념이다.
또 하나는 "조희룡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과 같은 풀뿌리 문화운동 소모임이 우리 고장에도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희룡은 문화관광부에서 2004년 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한 조선후기의 화가이다. 그동안 일반인에게는 조금은 생소한 인물이었는데, 그가 "이 달의 문화 인물"로까지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조희룡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의 노력 때문이었다. 조희룡은 신안군 임자도에 유배를 와서 그곳에서 많은 작품과 저서를 남겼는데, 바로 이런 연유로 해서 임자면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동호회를 만들어서 그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고, 그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 "이 달의 문화 인물"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이는 문화인물 선양 운동에 좋은 사례이다. 조희룡 외에도 이 고장이 배출한 문화 인물은 많다. 박화성, 김우진 등 그 업적만 가지고 따지면 조희룡 못지 않은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물들은 지금껏 "이 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되지 못했다. 바로 "조희룡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과 같은 추모 집단이 형성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셔널 트러스트"운동과 "조희룡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과 같은 풀뿌리 문화운동은 앞으로 우리 고장의 문화운동이 발전해 나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말로만 문화유산보호를 외치고, 문화예술인의 선양을 외치기보다는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러한 풀뿌리 문화운동이 더 절실히 요구되는 때 인 것 같다.
